십여 년 만에 모교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졸업을 앞둔 후배들에게 무엇을 말해줘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문득 내가 그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랐다.
“Why not change the world.”
이십 대 내내 듣고, 또 외쳤던 말이다.
내 모교의 캐치프레이즈였고, “배워서 남 주자”라는 말과 함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서 넘어지고 깨지고 또다시 일어서야 하는 순간들을 겪을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나 하나 제대로 바로 서는 것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얼마나 무거운 말이었을까.
그때는 그 무게를 잘 몰랐다.
한때는 정치를 하려 했었다.
졸업을 앞둔 무렵, 누군가 내 페이스북에 댓글을 남겼다.
정치를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금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변 사람들은 말렸다.
정치를 한다고 미리 말하면 오해를 사고, 선입견과 편견에 시달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로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정치가 나쁜 것도 아닌데 왜 숨겨야 하느냐고 생각했다.
정치를 하려는 이유는 정치에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고, 그 힘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좋은 정치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걸어왔다.
그러다 어느 계기로 그 길을 접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과 후회가 있었다.
지나고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비판하던 정치인들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는 나를 보았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필요악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런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십 년 가까이 좋은 정치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방향을 잃었다.
그때, 지금은 판사로 재직 중인 한 후배가 내게 말했다.
“로스쿨을 가보는 건 어때?”
로스쿨이라.
처음에는 낯선 선택이었다.
그러나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한 번에 바꾸지는 못해도, 내가 맡은 사건의 의뢰인 한 사람의 인생은 바꿀 수 있는 길이겠구나.
그렇게 비교적 늦은 나이에 로스쿨에 갔고,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사건은 밖에서 보면 크고 작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금액이 큰 사건도 있고, 형사처벌이 걸린 사건도 있고, 가정이 무너질지 모를 사건도 있다.
반대로 누군가 보기에는 사소해 보이는 사건도 있다.
하지만 의뢰인에게는 다르다.
그 사건 하나가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일 수 있다.
그 사건 하나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고, 가족 앞에서 웃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전 재산의 문제이고, 누군가에게는 전과의 문제이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지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부담을 느낀다.
다른 변호사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가끔 그런 악몽을 꾼다.
맡은 사건이 전부 패소하거나, 의뢰인이 법정구속되는 꿈이다.
다행히도 그런 꿈이 실제로 맞은 적은 없었다.
그래도 눈을 뜨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무겁다.
재판 선고일이면 여전히 긴장한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긴장한다.
결과가 좋으면 그제서야 한숨을 쉰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나를 믿고 찾아온 의뢰인.
그 믿음 앞에는 늘 부담이 있다.
나는 그것을 거룩한 부담감이라고 생각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누군가의 억울함을 듣는 일이다.
누군가의 잘못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책임을 묻는 일이고, 때로는 책임을 덜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무너진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어려움과 억울함을 해결해 나가는 것.
그것이 쌓여 판례가 바뀌고, 제도가 바뀌고, 결국 세상이 조금씩 바뀌는 것은 아닐까 싶다.
대학교를 졸업하며,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넘어지겠지만, 꼭 다시 일어서겠다고.
지금 그 말을 다시 하는 것은 그때만큼 쉽지 않다.
그때보다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었고, 내 한계도 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시 말해본다.
넘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누워 있을 수는 없다.
남의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은,
넘어질 수는 있어도 누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십 년이 지난 후에, 그때의 내가 다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때 역시 내가 십 년 후의 무게를 모르고 글을 썼구나.
하지만 십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견뎌주었듯,
지금의 이 글이 십 년 후의 나를 지탱해주리라 믿는다.
법률사무소 A&P
박사훈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