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사건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피의자나 가족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집행유예 정도면 받아들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운 것 아닙니까.”
“굳이 무죄를 주장할 필요가 있을까요.”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변호인으로서 집행유예 판결을 이끌어낸다면, 형사 사건의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충분히 의미 있는 방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건에서 그 정도의 결과만으로도 사건이 원만히 마무리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만으로 사건이 끝났다고 보지 않습니다.
한 사건의 변호사가 아니라 한 의뢰인의 변호사라는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본다면, 형사 판결 이후 이어질 수 있는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 역시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형사 사건이 끝이 아닙니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선고되면 형사 처벌로 사건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형사 판결 이후에는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서는 주범이 해외 조직이거나 신원이 특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확인되는 전달책, 송금책, 인출책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때 법적으로 문제되는 법리가 공동불법행위 책임입니다.
민법 제760조는 수인이 공동으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개별 사정에 따라 책임이 일부 제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예를 들어 30% 정도의 책임만 인정되는 경우라도 피해액이 큰 사건에서는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상당해질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건의 피해 규모가 수억 원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의 복합적인 부담
이러한 상황이 되면 피의자는 다음과 같은 부담을 동시에 안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 형사 전과 기록
✔ 형사 사건 변호사 비용
✔ 민사 손해배상 책임
✔ 민사 소송 대응을 위한 변호사 비용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해액이 수억 원 규모인 경우,
설령 공동불법행위 책임이 일부 제한되어 30% 정도의 책임만 인정된다 하더라도 실제 부담해야 할 금액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또한 민사 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 비용까지 고려하면, 형사 처벌을 넘어 상당한 경제적 부담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습니다.
결국 피의자는 형사 처벌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동시에 떠안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 양형 중심 대응이라는 선택
물론 의뢰인과 가족의 의사에 따라 양형 주장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하는 선택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실무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방식이 사건 진행 측면에서 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한 선택은 집행유예를 포함한 유죄 판결이 선고될 경우, 그 이후 어떠한 법적·경제적 결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선행된 이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형사 판결 이후 이어질 수 있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과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까지 포함하여, 사건의 전체적인 구조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무죄 주장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무죄 판단을 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의뢰인이나 가족의 의사만으로 언제나 무죄 주장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필자 역시 사건을 검토했을 때,
의뢰인이 범죄를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합리적으로 존재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하여 무죄 주장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객관적인 자료와 정황상 범죄 인식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라면, 해당 사건에서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무죄 주장을 하는 것은 결국 의뢰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 보이스피싱 사건의 현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미필적 고의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리적으로는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 사이의 미묘한 구분이 문제됩니다.
형법의 기본 원칙은 무죄추정과 입증책임의 원칙이며, 범죄의 고의는 검사가 입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면서 실무에서는
“스치기만 해도 처벌된다”는 인식이 형성된 것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필자는 이를 이전 글에서 ‘양형으로의 후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즉, 유·무죄 단계에서 다루어져야 할 범죄 인식의 문제가 충분히 검토되기보다, 유죄를 전제로 양형 단계에서 고려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문제의식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적용되는 죄명 역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 사기 - 사기 방조 -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 범죄단체가입·활동 -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
등이 함께 문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 날로 진화하는 범죄 수법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 역시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검사 사칭, 금융감독원 사칭 등이 주된 방식이었으나,
최근에는
- 로맨스 스캠 - 투자 사기 - 대출 작업 빙자 - 코인 환전 대행 사기 - 성인사이트와 코인을 결합한 사기 - 해외 조직이 번역 프로그램이나 AI를 활용한 사기 |
등으로 범죄 수법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자신이 정확히 어떤 범죄 구조에 연루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 변호인의 역할
이와 같은 사건에서 변호인의 역할은 단순히 법률 조항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범죄 구조를 정확히 분석하고, 의뢰인이 그 구조 속에서 실제로 범죄 인식을 가질 수 있었는지 여부를 입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몰랐다”는 주장 여부가 아니라,
실제로 속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 그래서 무죄 판단이 중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양형으로의 후퇴’라는 구조적 압박이 존재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만큼 무죄 판단을 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경위와 구조를 검토한 결과,
의뢰인이 범죄를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변호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합니다.
끝까지 검토하고,
끝까지 설명하며,
끝까지 설득하는 것.
그것이 변호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최선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법률사무소 A&P 박사훈 대표변호사가 실제 사건을 수행하며 경험한 과정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 및 사건의 개별 사정에 따라 법적 판단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