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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선고날 의뢰인 곁에 있다는 것|변호사로서의 작은 고집

박사훈 대표변호사 2026-10-26 조회수 13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은 선고기일에 직접 출석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민사사건의 선고기일에 가보면, 로펌 직원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삐 판사님의 말씀을 받아 적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민사사건의 선고기일에는 직접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담당 직원분들이 대신 참석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듣는다고 해서 이미 정해진 판결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형사사건만큼은 조금 다릅니다.


특히 결과에 따라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는 가능하면 직접 참석하려 노력합니다. 

무죄가 아니면 실형인 사건, 집행유예가 아니면 실형인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를 믿고 사건을 맡긴 의뢰인이 구속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혼자 감당하도록 두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맡은 사건에 대한 책임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혹시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 자리에서 의뢰인을 다독이고 곧바로 다음 절차를 논의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지난주 서울의 한 법원에 다녀온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집행유예를 목표로 치열하게 변론해 온 사건이었습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의뢰인의 여러 양형 사정을 고려하면 실형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의뢰인에게 그러한 위험을 충분히 설명했고, 의뢰인 역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꼭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교도소가 아닌 사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으로의 일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곁에서 지켜본 의뢰인에게서는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진심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 의뢰인을 사회와 격리하기보다는, 사회 안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나은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당일 일정이 빡빡해 참석을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날 의뢰인에게는 시간이 허락하면 가겠다고만 조심스럽게 전해두었습니다.


다행히 재판 직전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고, 선고 시간에 맞춰 간신히 법정에 도착했습니다.


저보다도 훨씬 덩치가 큰 의뢰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의뢰인은 반가움과 안도가 섞인 듯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오셨네요.”


그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습니다.


“불안함은 같이 견뎌야지요.”


그렇게 말하고 의뢰인의 뒤편에 앉았습니다.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변호사인 저 역시 초조했습니다. 판사님의 주문 낭독이 시작되고, 선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결과는 집행유예였습니다.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린 듯한 표정으로 저를 돌아보는 의뢰인이 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고생하셨습니다. 조만간 사무실에서 한번 뵈어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법정을 나섰습니다.


법정 문을 열고 나오며 사무실 단체 대화방에 집행유예 선고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제 어깨의 무게도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수십, 수백 번을 경험했어도 선고의 순간은 여전히 긴장됩니다.


그렇다고 마냥 안도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가 예정된 다른 상담들을 진행해야 했으니까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요즘은 사무실이 점점 커지고, 맡는 사건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 변호사와 직원들도 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모든 의뢰인에게 물리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쏟는 일이 매번 쉽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힘에 부치는 것이 솔직한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가슴속에 늘 잊지 않으려는 철학이 있습니다.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는 어쩌면 본질적으로 비용을 대가로 맺어진 법적 위임관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관계를 단순히 비즈니스로만 정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의뢰인에게는 인생이 걸린 유일한 문제일 수 있고, 변호사에게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간극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변호사로서 모든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100%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결과를 마주하는 마지막 순간에, 의뢰인이 외롭게 혼자가 아니도록 곁에 있어 주는 것.


비록 일정이 겹쳐 아주 간혹 그러지 못할 때가 있더라도, 제가 변호사를 하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싶은 고집입니다.


꼭 선고날 법정에 함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은 아닐 수 있습니다.

판결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 다른 서면 작성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수익에도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을 효율과 수익으로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가운 법과 숫자가 지배하는 법조계이지만, 어디에나 낭만은 조금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법률사무소 A&P

대표변호사 박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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